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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안성형외과의 역사

1. 안성형외과의 역사는 무엇인가?

섹션 제목: “1. 안성형외과의 역사는 무엇인가?”

안성형외과는 눈꺼풀, 눈물길, 안와, 그리고 눈 주위 부위의 재건, 기능 회복, 미용 치료를 다루는 세부 전문 분야이다. 그 기원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겹친다.

기원전 약 2250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감염된 눈물주머니 치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가 담겨 있다. 또한 그 법전에는 의사가 청동 칼로 눈 수술에 성공하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그의 손이 잘린다고 적혀 있어 눈 수술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음을 보여 준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켈수스(기원전 25년기원후 50년)는 전진 피판, 미끄럼 피판, 섬 모양 유경 피판을 기술하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재건 원칙을 확립했다. 그는 또한 안구가 세 겹의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수정체 압하술을 개선했다. 갈레노스(서기 150200년경)는 눈물뼈를 통해 코안으로 소작하여 비루관 폐쇄를 치료했다고 전해지며, 이 이론은 1,000년 넘게 의학계를 지배했다.

1583년 게오르크 바르티쉬(Georg Bartisch)는 처음으로 기록된 안구 적출을 시행하고, 은바늘로 침하술을 시행했다. 19세기 초 카를 페르디난트 폰 그레페(Carl Ferdinand von Graefe)는 고전적인 눈꺼풀 재건 술기를 부활시키고 다듬었다.

현대 안성형외과를 결정지은 전환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안면 외상과 화상의 양과 중증도가 성형외과 의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서, 눈꺼풀과 안와 손상은 안과 의사에게 맡겨졌다. 주로 백내장, 녹내장, 사시를 훈련받은 안과 의사들이 새로운 연조직 재건 술기를 개발했고, 안성형외과는 독립된 세부 전문분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는 재건적 눈꺼풀 및 안와 수술, 눈물길 질환의 관리, 안와 질환과 의안구 치료, 그리고 눈 주위 미용수술을 포함한다.

Q 안성형외과는 왜 독립된 세부 전문분야가 되었을까?
A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안면 손상과 화상의 수가 성형외과 의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안과 의사들이 눈꺼풀과 안와 손상을 맡게 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술기 개발을 촉진했고, 안성형외과가 독립된 전문 분야로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적인 눈 주위 재건외과의 선구자는 폰 그레페이다.

주요 술기의 발전 연표:

  • 1809년(폰 그레페): 최초의 안검성형술(blepharoplasty). 괴저에 걸린 아래눈꺼풀을 볼의 유경 피판으로 재건했다.
  • 1829년(프리케): 관자부를 기저로 하는 단일 유경 피판(프리케 피판)을 기술했다. 눈썹 위의 피부를 이동시켜 전엽 결손을 덮는다. 안면신경 측두지 손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피하에서 거상한다.
  • 휴즈 tarsoconjunctival flap: 상안검 조직을 하안검에 부착하는 2단계 수술로, 전층 하안검 결손에 사용한다. 후엽은 검판과 결막으로, 전엽은 피부와 근육으로 대체한다. 상안검 가장자리에서 4mm의 검판을 보존한 채 반원형으로 디자인하고, 검판을 전층 절개해 뒤집어 봉합한 뒤 3~4주 후 절개하여 분리한다.
  • Cutler-Beard 술식: 상안검 결손에 대해 하안검에서 상안검으로 피판을 전진시키는 2단계 수술이다. 약 1개월 후 절단한다.
  • 1975년(텐젤): 텐젤 반원형 피판을 기술했다. 외측 안각 절개와 안각 인대 분리 후, 외측을 기저로 하는 근피판을 회전·전진시켜 한 번의 수술로 아래눈꺼풀 결손(가장자리의 절반까지)을 닫는다.
  • Tripier 피판: 위눈꺼풀에서 채취한 근피판이다. 후층이 없는 작은 결손에 사용하며, 재건의 침습성을 줄여 준다.
  • switch flap: 위눈꺼풀의 전층 결손을 아래눈꺼풀 피판으로 재건한다(반대도 가능하다). 눈꺼풀 가장자리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회전하므로 수술 후에는 눈을 뜰 수 없고, 2~3주 후에 피줄을 절단한다.

두 단계 수술(Hughes법, Cutler-Beard법)은 몇 주 동안 눈을 감고 있어야 해 불편했기 때문에, 한 단계로 끝나는 국소 피판(예: 텐젤 피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후층 대체 재료로는 경구개 막, 구강 막, 이개 연골, 비중격 이식편이 연구되었다.

아래에 주요한 두 단계 수술을 비교한다.

수술법대상공여부절단 시기
Hughes법아래눈꺼풀 결손위눈꺼풀3~4주 후
Cutler-Beard 수술상안검 결손하안검약 1개월 후
교환 피판상·하 모두반대쪽 눈꺼풀2~3주 후

20세기 후반에는 미용 수술 수요가 증가하면서 안검 수술이 재건 목적에서 심미적 정교화로 발전했다.

Q 안검 재건술은 왜 2단계 술식에서 1단계 술식으로 바뀌었는가?
A

Hughes 수술과 Cutler-Beard 수술은 수주 동안 눈을 감은 상태로 지내야 해서 불편했다. Tenzel 반원형 피판 같은 1단계 국소 피판이 널리 사용되면서 많은 경우 이런 불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광범위한 결손에서는 여전히 2단계 술식이 선택된다.

5. 안검하수 수술·내반·외반·안검경련의 역사

섹션 제목: “5. 안검하수 수술·내반·외반·안검경련의 역사”

안검하수 수술

1923년(블라스코비치): 부분 검판 절제를 통한 거상근 단축술을 기술했다. 상직근 기능이 나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퇴근막 슬링술: 상직근 기능이 보존된 안검하수에 대해 대퇴근막(fascia lata)을 검판에 부착하는 걸기 수술로 개발되었다.

1975년(존스): 건막복원술(aponeurotic repair)을 도입했다. 노화 관련 건막성 안검하수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건막의 신장, 파열 또는 이탈에 대해 건막을 전진시키고 다시 부착한다.

후방 접근법: 뮐러근-결막 절제술(MMCR)과 White-line 전진술. 피부 절개를 피하고 외부 박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막 쪽에서 수술한다.

안검내반과 안검외반

안검내반의 초기 치료(1300년 전부터): 가장 초기의 수술적 교정은 수직 외반 봉합으로 눈꺼풀 가장자리를 일시적으로 바깥쪽으로 뒤집는 것이었다. 이후 전방 판층 후퇴술이 개발되었으며, 특히 트라코마 환자에서 사용되었다.

현대의 안검내반 교정: 아래눈꺼풀 견인근 재부착과 수평 긴장 강화(외측 검판띠술)의 조합.

안검외반의 초기 치료: 현수 봉합, 피부와 안륜근의 삼각형 절제.

현대의 안검외반 교정: 외측 검판띠술로 수평 이완을 교정하고, 아래눈꺼풀 견인근을 재부착하며, 반흔성 안검외반에서는 반흔 유리와 피부 이식을 추가한다.

안검경련

최초의 문헌 보고: Mackenzie가 1857년에 기술했다. 약 1560년경 Bruegel (the Elder)의 그림에도 이 질환으로 보이는 묘사가 있다.

초기 수술 전략: 안면신경 avulsion과 과도한 안륜근 절제 같은 파괴적 접근이 중심이었다.

1980년(스콧): 보툴리눔 독소 A가 도입되었다. 내과적 치료가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파괴적인 수술 치료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1981년(길럼-앤더슨): 체계적인 해부학적 접근이 확립되었다. 눈썹 처짐, 눈꺼풀올림근 분리, 외측 안각 이완, 안륜근 경련을 다루는 술식을 정리했다.

전두근 현수술

적응증: 눈꺼풀올림근 기능이 4mm 미만인 중증 안검하수. 건막복원술로는 충분한 눈꺼풀 올림이 되지 않는 경우에 적용한다.

사용 재료: 자가 대퇴근막(골드 스탠더드) 외에 고어텍스® 시트, 나일론 실, 실리콘 로드가 확립된 선택지다.

특기 사항: 재수술의 용이성과 장기 결과는 재료에 따라 다르므로 환자 상태에 맞게 개별화가 필요하다.

Q 보툴리눔 독소는 안검경련 치료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A

1980년 스콧이 도입하기 전에는 안검경련 치료가 안면신경 avulsion과 안륜근의 대량 절제 같은 파괴적 수술 전략에 의존했다. 보툴리눔 독소 A로 인해 증상을 반복적인 약물 주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수술의 역할은 제한된 경우로 좁아졌다.

6. 누관 수술·안와 수술·영상 진단의 역사

섹션 제목: “6. 누관 수술·안와 수술·영상 진단의 역사”

눈물을 지나가게 하는 길을 만드는 수술 시도는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고대(1~2세기): Celsus와 Galen은 누골을 통해 비강 안으로 소작하여 누도 폐쇄를 치료하고, 누낭과 비강 사이에 누공을 만들었다.
  • 18세기(Woolhouse): 누낭을 제거하고 누골에 통로를 만들며 금속 배액관을 넣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Maître-Jan이 누낭과 누관은 분비샘이 아니라 관이라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 1904년(Toti): 외측 누낭비강문합술을 기술했다. 피부 절개로 누낭에 접근해 인접한 뼈와 함께 안쪽 벽을 제거하여 비강으로 통하는 새로운 배출구를 만든다.
  • 20세기 초(Kunt, Dupuy-Dutemps, Bourguet): 막판 봉합(Kunt)과 판을 이용한 문합술(Dupuy-Dutemps와 Bourguet)로 개량되었다.
  • 1989년(McDonogh, Meiring): 강성 비강내시경을 이용한 현대적 비내 누낭비강문합술을 기술했다.

19세기 말 Caldwell 등이 비내법을 보고했지만, 육안 수술은 어려웠고 20세기 초 Toti의 외측법이 주류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강성 비강내시경을 사용한 비내법이 개선되었고, 21세기에 들어 비내법은 외측법과 거의 비슷한 수술 성적에 도달했다. 현재는 증례에 따라 두 방법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외측법의 재폐쇄율은 10% 이하라는 보고가 많다. 2000년 이전에는 외측법과 맹목적 누관 삽입술이 주류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누도내시경의 도입 등으로 유루증에 대한 접근이 크게 다양해졌다.

다음에 누도 수술의 주요 역사적 전환을 정리한다.

연대수술법・사건
1~2세기Celsus와 Galen의 누골을 통한 소작
1904년Toti의 외측 누낭비강문합술(외측법) 기술
20세기 초막판 봉합과 판문합술로 개선
1989년경성 비내시경을 이용한 비내 눈물주머니코안연결술의 확립
2000년 이후눈물길 내시경의 도입으로 수술 방법이 더 다양해짐
Q 눈물주머니코안연결술은 어떻게 발전했는가?
A

1904년 Toti가 시행한 외부 눈물주머니코안연결술이 시작이 되었고, 이어 Kunt와 Dupuy-Dutemps 등이 막판을 개선했다. 1989년에는 경성 비내시경을 이용한 비내 눈물주머니코안연결술이 확립되었고, 21세기에 들어 비내법은 비외법과 거의 같은 성적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눈물길 내시경의 도입으로 수술 방법은 더욱 다양해졌다.

  • 1583년 (Baltisch): 가장 먼저 기록된 안구 적출술이 시행되었다.
  • 1817년 (Beer): 가장 먼저 기록된 안구 내용물 제거술(분출성 출혈 후).
  • 1884년 (Mules): 안구 내용물 제거술 후 가장 처음의 안와 임플란트(유리 구체)가 삽입되었다. 이상적인 안와 용적 대체물을 찾는 탐구가 시작되어 한 세기 동안 이어졌다.
  • 그 후 수십 년 동안: 금속, 연골, 뼈, 지방, 고무 등 여러 재료가 시도되었다.
  • 1980년대부터: 다공성 재료(산호 유래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섬유 조직과 혈관이 임플란트 안으로 자라 들어가고, 통합이 좋아지며, 배출 위험이 줄고, 의안의 움직임도 향상되었다.

대부분의 안와 임플란트는 결막 아래에 놓여 외부 환경과의 장벽을 형성하고 수술 후 감염 위험을 낮춘다. 최근 CT 측정에서 안와의 전체 용적은 약 24 mL로 추정되며, 눈 제거 후의 용적 감소는 평균 7.9 mL(7.0–9.0 mL)로 보고되었다.

  • 1911년: 그레이브스병(갑상선 안병증)에 대한 최초의 안와 감압술 기록.
  • 1931년(나프지거): 개두 접근을 통해 안와 지붕을 제거.
  • 1936년: 내벽 감압, 1930년: 안와 바닥 제거가 잇따라 기술되었다.
  • 1957년: 내벽과 안와 바닥을 함께 감압하는 2벽 감압술이 도입되었다. 이는 가장 널리 쓰이는 표준이 되었다.
  • 20세기 후반: 3벽 확장술이 도입되었다. 안와 바닥은 보존하면서 내벽과 외벽을 대칭적으로 감압하는 “균형 감압” 개념이 개발되어 복시 위험을 줄였다.
  • 지방 제거 감압술: 1970년대에 처음 제안되었다. 지방 우세형 갑상선 안병증에 효과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영상 진단의 발전은 안와 질환의 진단과 관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 1956년(Munt와 Hughes): 안과 초음파의 임상적 유용성을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 1960년대: 미국과 오스트리아의 연구자들에 의해 안와 적용이 개발되었다.
  • 1970년대 초: 최초의 상용 B-모드 초음파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안전하고 실용적이며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진단 도구로 자리 잡았다.
  • CT와 MRI의 보급: 단순 X선, 저사이클로이드 단층촬영, 동맥조영술, 정맥조영술은 거의 사라지고 CT와 MRI가 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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